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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턴 스포츠와 떠나는 강원도 영월 여행, 역사와 세월이 있는 길을 달리다!

젊은이는 미래를 꿈꾸다가 하나 둘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과거를 회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밝은 내일만 꿈꾸거나 또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만 가득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조금 어둡게 말해보면, 젊은 사람들은 내일을 걱정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과거를 후회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부디 우리의 앞날에 고뇌보다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 하길 빌며, 여행기를 시작해봅니다. 요즘 저는 여행을 다니면서 오래 전 그 곳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젊은 시절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닌 터라 새 경험과 추억이 이리저리 겹쳐 또 다른 감상을 안겨주기 때문이죠. 대부분 혼자 다녔던 곳이라 가족과 함께 찾을 적엔 그 감회가 더욱 새롭습니다. 그 동안은 아이가 입학 전이었고 아직 ‘학원 맴돌이’를 시작하지 않아 가족여행은 가능했으나 ‘나홀로 여행’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일일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차에 아이는 이것저것 배우고 싶어해 어른들보다 바쁘고 아내는 멀리 떠나는 걸 힘들어 합니다. 때는 봄, 나홀로 여행에 그린라이트가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이번 영월여행은 9년 만입니다. 첫 아이를 가진 기념으로, 막 아내의 배가 부르기 직전에 둘이 다녀왔으니 어느새 강산이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월에 가보니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기보단 영월만이 가진 아늑한 기운이랄까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곳의 시간이 더디 흘러서일까요?

 

 

“과거의 흔적을 찾아 떠난, 나홀로 강원도 여행”

 

혼자 떠나는 여행에 준비된 차가 너무 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잠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각해보니 저는 오래 전부터 크고 강한 ‘남자의 차’를 좋아했습니다. 오지 탐험을 하던 시절에는 뉴 코란도를 운전했는데 이유는 분명했답니다. 영월 동강이 뜨거웠던 1996*년 이 지역을 다니면서 네 바퀴 굴림, 사륜구동과 높은 지상고의 위력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SUV 사랑은 지금 타는 차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족을 중요시하며 잠시 잊혀졌던 나의 또 다른 면모지만, 이제 와 나이가 더 들었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습니다.

* 동강 댐 건설 계획 발표와 그에 따른 시민운동이 일어난 해

 

 

쌍용자동차의 G4 렉스턴과 렉스턴 스포츠는 둘 다 한 덩치 하는 SUV입니다. 이 육중한 바디는 어쩔 땐 비좁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체감됩니다. 완벽한 나홀로 여행을 위해 동트기 전 출근을 기다리는 빼곡한 차 사이를 지나려니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는 3D AVM을 이용하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박력 있는 남자는 매력적이지만, 배려의 마음까지 갖춘다면 특별한 남자가 됩니다. 시간이 흘러 지켜야 할 가족이 생긴 뒤 깨달은 사실입니다. 강하고 커다랗지만 섬세한 기능 또한 어울리는 렉스턴 스포츠와 떠나는 여행의 감회가 새로웠던 또 다른 이유였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서울 외곽이라서 주요 간선도로가 가깝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도심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근길 정체가 시작됩니다. 집에서 영월로 향한 순간부터 정체가 시작되는 꼴입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혼자 가는 여행이었기때문에 누구 눈치볼 일이 없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여행 갈 시간을 낼 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분인지 극심한 정체도 무리 없이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외곽순환고속도로의 정체는, 으레 그랬듯 중부선을 타면서 사라질 것입니다.

 

 

“9년 전보다 빨라진 영월 가는 길”

 

광주원주선 개통 전, 영월 가는 방법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그 때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선으로, 이어 감곡 나들목에서 38번 국도로 내려와 영월까지 달리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주 분기점 직전의 신평 JC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제천 나들목까지 달리는 길이 좋습니다. 거기서 태백 방향 국도 38호선을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경로보다 20분 가량 빠른 길입니다.

 

 

아침식사로 7시 30분경에 양평 휴게소에서 김치찌개를 먹습니다. 지역 음식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으시겠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롱 패딩’만 평창 에디션이 있는 것은 아니죠. 이 음식은 재미있게도 무려 ‘평창 에디션 김치찌개’랍니다. 무슨 연유(緣由)로 붙여진 이름인지 모르지만, 이름에 끌려 선택했으니 저라는 고객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 사실은 확실합니다.

 

 

제천 IC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경입니다. 여기서 첫 목적지인 영월 선돌까지는 40분 가량 소요됩니다. 왕복 4차선의 국도 38호선이 뚫리기 전 서울에서 영월을 가려면 평창을 통해야 했습니다. 이 여정의 끝에서 여행자는 소나기재를 만나게 됩니다. 1457년, 16세 단종이 인생의 마지막 1년을 보낼 곳에 들어서며 넘은 고개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그 누군가는, ‘구름도 울음보 터져 소나기가 내렸다’ 며  감상을 표현한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지금 선돌을 보려면 영월 가는 길에서 일부러 돌아가야 합니다. 국도 38호선 연당 교차로에서 평창 쪽으로 방향을 바꾼 후 다시 영월 삼거리에서 31번 국도 영월 방향으로 접어들면 고갯길이 나타납니다. 길은 잠시 경사가 급하고 회전이 잦은 와인딩(Winding) 코스로 변하는데 이때다 싶어 가속 페달을 쭉 밀어봅니다. 하지만 렉스턴 스포츠는 그렇게 타는 차가 아닙니다. 큰 덩치와 달리 부드럽게 다뤄야 제 성능을 발휘하죠. 렉스턴 스포츠는 급경사에서도 힘에 부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또 꾸준히 밀고 나가는 뚝심도 강한 것이 매력적인 차입니다. 반면 역대 쌍용자동차에 비해 역동성은 아쉬웠는데요. 747 점보기로 곡예비행을 하는 격이랄까, 평소 운전 습관대로 터프한 주행을 마음껏 펼칠 수는 없었습니다.

 

 

영월 선돌은 높이 70m의 기암절벽입니다. 소나기 고개 정상에 위치한 무료 주차장에 내려 100m만 걸으면 절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선돌은 이름처럼 절벽 앞에 곧추서있지만 사실 억겁의 세월 동안 거대한 석회암이 깎이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지구 표면의 일부랍니다. 이 세월의 흔적이 바로 생명 없는 이 돌덩어리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사람들이 감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선돌 전망대 바로 옆에는 청령포에서 시작해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가 있습니다. 이름은 ‘단종 유배로’ 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560년 전 처럼 이 길을 억지로 걷지 않을 테니 말이죠. 선돌에서 차로 4분 정도 내려가면 장릉이 나옵니다. 단종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마음으로 넘은 고개 지척이 그가 영원히 누울 자리였던 셈이죠. 그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도 장릉에서 가까워, 차로는 5분 남짓의 거리입니다.

 

 

“섬 아닌 섬, 감옥 아닌 감옥 청령포”

 

청령포는 영월 서강이 휘돌아가는 안쪽에 생긴 퇴적지형입니다. 단종이 1년간 머문 유배지는 계절에 따라 50M에서 100M로 폭이 변하는 강 너머로 배를 타고 오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섬은 아닙니다. 유배지 뒤쪽에 노산대라는 절벽이 있는데 단종이 왕자로 강봉(降封)된 이름 ‘노산군(魯山君)’에 기인한 지명이라고 합니다. 그걸 오르내리는 것보다 도강이 쉽기 때문에 배를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이는 유배지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중 하나입니다.

 

 

단종이 머물렀던 가옥은 빽빽하게 자란 소나무 숲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배에서 내려 자갈밭을 걸어가는 동안 거친 도로와 뜨거운 햇살 때문에 ‘불행 끝, 행복 시작’을 꿈꾸며 그늘진 소나무 숲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 숲은 오랫동안 머물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습기는 많고 바람은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단종은 이곳에서 일 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그나마 여름 홍수로 강이 범람하는 바람에 영월 객사로 거처를 옮긴 것은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나무들이 단종이 살았던 가옥 쪽으로 누워있다던 구전(口傳)도 이곳에 오면 마치 신앙(信仰)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보면 대부분의 나무들은 자기 멋대로 제각각 자랐답니다. 하지만 집 쪽으로 완전히 누운 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사실 이 나무의 존재는 단종이 복위된 후 발견된 것이기때문에, 사실여부를 따지는 것 보다는 그만큼 민중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유배지 소나무 숲 가운데에는 특별한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답니다. 이름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언뜻 불교식 이름 같지만 한자를 풀이해 보면 볼’관觀’에 들을’음音이군요. 나이는 정확하지 않지만 단종이 그 나뭇가지 갈라진 사이에 걸터앉아 있곤 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름 또한 단종과 관련한 것으로 그의 고통을 보고 들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청령포 단종 유배지 입장료

성인 3,000 원
중고생 2,500 원
어린이 2,000 원
어르신 1,000 원
(뱃삯 포함)

 

운영시간 09:00~17:00 (연중무휴)

 

 

“단종은 묻혔지만, 역사는 살아있다”

 

청령포에서 장릉으로 이동합니다. 12시에 가까운 시간, 점심을 먹을지 장릉 경내를 구경할지 잠시 망설였으나,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해 식당으로 차를 돌립니다. 영월에 오면 늘 찾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 장릉 보리밥집은 1996년 후로 지금까지 꼭 아홉 차례 와본 곳입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식당 앞 풍경은 바꿨어도 그 내부와 맛은 그대로입니다. 이날 12대 정도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은 이미 만 원입니다. 장릉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오면 될 일인데, 막상 주차하고 나니 어느새 발걸음은 왕릉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영월 장릉은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의 무덤입니다. 1970년 사적 제196호로 지정됐고 이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답니다. 단종은 영월로 유배된 이듬해 또 다른 복위 사건 터지고 이를 빌미로 사약을 받아 죽음을 당합니다. 당시 영월지역의 유력자인 엄흥도(嚴興道)가 동강에 버려진 시신을 몰래 수습해 ‘동을지山‘ 자락에 암매장했다고 하는데, 그 위치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1541년 당시 영월군수였던 박충원이 찾아내 묘역을 정비했다 합니다. 단종이 추복(追復)*된 것은 1698년 숙종 때의 일입니다.

 

* 1441년 출생, 1457년 사망, 재위 기간 1452∼1455년 / * 빼앗았던 호칭과 직위를 그 사람이 죽은 뒤에 다시 회복하여 줌

 

 

 

영월 장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단출합니다. 문인석과 석마(石馬) 각 1쌍은 있으나 무인석 등은 없습니다. 왕으로 복권은 되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여느 왕가의 무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신 다른 곳에 없는 시설도 있는데요 단종과 관련된 사건으로 죽임 당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配食壇祠)’, ‘엄흥도 정려비’, 박충원의 행적을 기록한 ‘낙촌기적비’, ‘배견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곳은 탐방로 역시 남다릅니다. 봉분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왕가의 묘는 드문데, 서울 강남의 정릉과 이 곳뿐입니다. 능선을 따라 소나무를 양쪽에 거느리고 올라가는 분위기의 왕릉 가는 길, 묘역에서 제실 등의 시설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남다릅니다.

 

 

최근 단종과 관련해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단종의 아버지 문종은 당시 세종 때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김종서에게 단종의 안위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문종이 죽은 후 김종서는 무엇을 했냐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고, 필요 이상으로 강력한 세조의 대응이 김종서 때문이라는 설까지 포함해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물론 세조 집권 시기에 왕권이 강화되고 이런저런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승자의 프레임이고, 좋은 결과를 들어 과정의 문제를 묵과(默過)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일반 백성의 평가를 반영한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듣고 보니 우리 각자의 인생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영월 장릉 입장료

성인        2,000 원
중고생    1,500 원
어린이    1,000 원

 

만 60세 이상 무료 입장

 

주차비 무료

 

 

장릉 관람을 마친 시간은 오후 1시, 보리밥집은 아까 보다는 좀 한산합니다. 보리밥 하나를 주문하면 6가지 산나물과 6가지 채나물, 몇 가지 찬이 곁들여 나오는데요. 보리밥에는 항상 감자 한 알이 들어 있습니다. 보리마저 귀하던 시절 배를 채우기 위해 밥에 넣었던 감자가 이젠 전통이 된 셈이죠. 여기에 거친 된장국은 필수입니다.

 

 

약 10년 전에 한차례 변하여 맛이 더 부드러워졌다고는 하지만, 강원도 산골 감성은 여전합니다. 양념을 다 넣어도 맛이 부드러운 이유는 밥을 다 먹은 후 알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 만든 조미료에 누구보다 예민한 편인데, 이 곳 음식을 먹으면 속이 항상 편안합니다. 계절에 따라 색다르게 더울 땐 묵밥 한 그릇도 추천드립니다.

 

 

“남자의 가슴에 바람이 분다, 스트레스 풀리는 봉래산 정상의 전경”

 

 

영월 시내 가운데 우뚝 솟은 봉래산은 영월 어디에 있어도 시야에 걸립니다. 해발 고도는 977m로 높지 않지만 영월에서 만큼은 그 존재감은 크다고 여겨집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영월 시내 전경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또한 봉래산은 패러글라이더를 메고 도심 위로 뛰어내릴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활공 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보현산 천문대 다음으로 좋은 관측 환경을 갖춘 시설, 별마로 천문대를 보유했으며 영월의 현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 또한 이곳입니다. 만일 별 관측을 위해 봉래산을 방문한다면 기상예보를 참고해 1박 이상의 일정을 잡기 바랍니다. 방문 전 별마로 천문대의 공지내용을 확인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별마로 천문대 입장료

성인 7,000 원
중고생 6,000 원
어린이 5,000 원
만 60세 이상 3,000 원
(관측 프로그램 포함)

 

운영시간

02:00~22:00 (동계)

02:00~23:00 (하계)

 

홈페이지 https://www.yao.or.kr:451/

 

“남자의 여행 감성을 배가시킨 험로드라이브”

 

영월 시내에서 봉래산 정상까지는 약 10km,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입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약 4km의 시내 구간을 제외하고는 전구간 급경사의 굴곡진 산길이라 주의를 요해야 하는 곳입니다. 특히 천문대길 4Km은 차선도 없고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구간이며, 수목이 우거져 낮에도 그늘진 구간이 많습니다. 겨울철에는 쌓인 눈을 치우지 못해 차량 통행이 금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름 장마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시에도 야간에는 안개가 짙어 3~4m 정도 앞이 안 보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날은 쾌청한 날은 아니었지만 산길을 오르는데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좁은 회전 구간에서 내려오는 차를 만나 교행(郊行)에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하지만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전가지보(傳家之寶)*가 있으니 렉스턴 스포츠에 탑재된 3D AVM입니다. 사이드 미러로 관측하기 어려운 측면과 차량 하부 장애물을 확인할 수 있으니 좁은 길 운전에서는 보물이 따로 없습니다. 경사진 길을 장시간 오르내리는 능력은 오프로드 명가, 쌍용자동차의 특기입니다.

 

* 대대로 집안에 전하여 내려오는 보물. 

 

 

렉스턴 스포츠에 탑재된 브레이크의 평가도 긍정적입니다. 전 영역에 걸쳐 힘이 고르게 분산돼 제동 시 차체 방향 유지가 용이하며, 브레이크 냉각도 원활하기 때문입니다. 천문대길 곳곳에서 브레이크 파열에 대한 경고문 볼 수 있는데, 이는 저단 기어를 써 천천히 내려가라는 경고입니다. 일부러 가속을 하지 않는다면 드라이브 모드 상태에서 간간이 브레이크 사용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습니다. 렉스턴 스포츠는 그럴 만큼 단단한 SUV인 것은 확실합니다.

 

오후 6시 30분, 집을 출발한지 딱 12시간 만의 귀가입니다. 오랜만에 혼자 떠난 장거리 봄여행은, 나만의 취향을 고려한 요소들로 가득해 떠나기 전 설렘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렉스턴 스포츠와 영월로 떠난 남자의 시간 여행, 가끔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 되지않는 분들이라면 역사 따라 강원도의 기운을 한껏 받아보시길 추천드리며 글을 마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