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볼리 타고 보물섬 여행 첫번째 이야기, 남해 다랭이마을•독일마을

국내에 보물섬으로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이는 오래 전부터 볼거리가 많다고 해서 남해군 스스로 부르던 이름입니다. 이곳은 1973년 개통된 남해대교를 건너 들어갔다가 각기 다른 5개의 공법과 모양으로 지어진 창선 • 삼천포대교를 통해 육지로 나올 수 있는 섬입니다.

 

경상남도 하동군 노량리와 남해군 노량리가 다리로 이어지기 전 이곳은 외롭고 답답한 섬이었습니다. 육지와의 거리는 고작 1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노량해전에 대한 기록에서 보듯이 뱃길도 순탄치 않았는데 오죽하면 조선시대 귀양지 중 하나였나 싶습니다.

 

국내 최초의 사장교인 남해대교(1973년 개통)

 

섬이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자 이곳은 관광지로 주목 받습니다. 다도해가 내려다보이는 여러 언덕에 각 분야 예술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고 이는 이섬의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습니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개인적으로 이번 남해 여행은 16년 만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예전에 창선 • 삼천포대교 개통 기념으로 당시 새 차였던 뉴코란도를 타고 가 2일을 머무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했고 티볼리 디젤을 운전해 방문했습니다. 사전에 1.5가솔린 터보와 1.6 디젤 모델 중 선택이 가능했는데 나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전자는 앞선 여름 장거리 여행 때 운전해 본 경험도 있는 데다 연비를 고려하면 디젤차가 다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남해는 서울을 기준으로 부산보다 더 먼 곳입니다. 중부, 경부, 대전통영, 남해 등 4개의 고속도로를 경유해 빨리 달려도 5시간이나 걸립니다. 부산과 광주에서도 3시간 가까이 소요되니 다소 큰 맘먹고 움직일 곳인 셈입니다.

 

이번 남해여행은 1박 2일로 진행됐는데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하동군에 위치한 진교 IC를 이용해 남해고속도로를 빠져나옵니다. 이어 노량리에서 남해대교를 통해 남해군으로 진입하는데 가장 먼저 대교 바로 옆에 위치한 남해 충렬사를 방문합니다. 이어 남면에 위치한 다랭이마을에서 남해 특산 멸치 쌈밥으로 점심을 먹고 그 후에 이번 남해여행 1일차의 마지막 방문지인 독일마을로 이동해 그곳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남해 요트학교 인근 부두에 선 베리 뉴 티볼리

 

2일차 일정은 아침 일찍 숙소 바로 옆의 요트학교 부두를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어 체크아웃 후 독일마을 바로 옆에 위치한 원예 예술촌을 방문합니다. 다음으로 사천시 삼천포항으로 이동해 남해 사천 해상 케이블카를 탑승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남해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상상 양떼목장으로 이동합니다.

 

남해 상상양떼목장

일정표 상으로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이번 여행 동선은 조금 꼬인 것이 사실입니다. 평소와 달리 상세 이동선을 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로 반대쪽에 있는 남해 사천 해상 케이블카와 상상 양떼목장 사이를 X자 모양으로 오가느라 50분가량 허비합니다. 이것 역시 여행의 묘미라지만 보다 합리적인 여정은 이렇습니다. 이 섬을 남해대교 쪽에서 진입할 경우 충렬사, 상상 양떼목장, 다랭이마을, 독일마을, 해상 케이블카의 순서로 이동하는 것이 최적의 경로입니다.

 

남해 충렬사

 

남해 충렬사는 정유재란 막바지인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하자 임시로 장사 지냈던 무덤 인근에 세워진 사당입니다. 애초에 공의 시신이 아산으로 옮겨진 후 가묘만 남아있다가 35년 후에 기념비가 세워지고 이후 사당 등의 건물이 들어섭니다. 그러다가 1662년(현종 3)에는 충렬사(忠烈祠)라는 현재의 사액(賜額)을 받습니다.

 

 

남해 충렬사

 

충렬사 앞에는 정식 주차장은 없고 대신 관리사무소 옆에 공터가 있어 6대가량 주차 가능합니다. 또 주변 도로 주변에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차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한편 남해 충렬사 앞바다에 거북선 한 척이 정박돼있는데 입장료는 일 인당 500원입니다.

 

남해 충렬사 앞 거북선

현재 옛 여수항 이순신 광장, 서울 세종문화회관 이순신 기념관 그리고 남해 충렬사 등에 전시된 거북선은 고증을 거쳐 만들어져 서로 비슷한 크기와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차이라면 이곳의 거북선은 바다에 띄워져 있어 노를 저어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거북선 내부

또 내부에 갑옷과 무기 모형 등이 배치되어 있어 착용하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기는 내 기준에서는 어린이용입니다. 선조들께서 우리보다 유난히 작았던 것은 아닐 테고 내가 크기 때문일 겁니다. 덕분에 착용한 모양새가 볼품없지만 덕분에 아이와 크게 웃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랭이 마을

 

남해 충렬사와 거북선 관람을 마친 일행은 다랭이 마을로 향합니다. 이는 남해섬 남단으로 남해대교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입니다. 이곳은 해안의 비탈진 지형에 이 지역에서 ‘다랭이’라고 불리는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농사짓던 작은 마을입니다. 내가 이 마을을 처음 방문했던 1990년대 말만 해도 타지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라고는 구멍가게 하나였지만

 

남해 다랭이 마을 주차장과 진입로

 

지금은 마을 입구에 관광버스 주차장이 생기고 큰 길에서 마을로 직접 내려가는 진입로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너 개의 대형 커피가게가 자리 잡았고 마을 주민들은 다랭이 팜이라는 영농조합을 만들어 막걸리 등을 공동 생산하고 타지 관광객을 위한 식당도 운영합니다.

 


남해 다랭이 마을의 여름 풍경(2004년 8월 촬영)

 

사실 다랭이 마을은 벼를 심고 한참 키우는 5월에서 9월 사이가 가장 보기 좋습니다. 이미 수확이 끝나고 논에 물이 빠져 밭이 된 지금은 방문에 최적기는 아닙니다만 이 시기 또 이 시간이 아니면 언제 온전히 주차장에 여유롭게 차를 세우고 한가롭게 마을 골목 사이를 누빌 수 있을까 싶습니다.

 

2019년 11월 남해 다랭이 마을 풍경

 

아쉬운 것은 그 동안 이 마을의 주 수입원이 농업에서 관광업으로 바뀌면서 마을 중심부 다랭이논 일부가 사라지고 대신 상업시설이 들어선 것입니다. 대신 마을 뒤 설흘산(해발 448M) 자락, 더 열악한 지형이 개간됐지만 마을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다랭이 논, 밭

 

다랭이 마을에는 카페 외에 빵집 등도 있는데 주말에만 영업하는지 아니면 문을 닫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논갈이 등의 체험과 마을 투어 등 다랭이 팜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은 애초에 20인 이상 모여야 가능하기에 주 중에는 운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해 다랭이 마을 골목 풍경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당 한 곳이 문을 열어 마침 시장하던 차에 점심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기대보다 깔끔한 분위기에 음식도 정갈합니다. 주문 가능한 메뉴는 다양하지만 우리는 남해의 지역 음식인 멸치쌈밥과 해물파전을 주문합니다. 된장과 함께 뚝배기에서 불에 익혀진 검지 굵기의 멸치는 의외로 고소하고 잔 가시의 존재감이 크긴 하지만 식감도 나쁘지 않습니다.

 

한편 남해 다랭이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한려수도 앵강만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해안 산책로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올해 잦았던 바람과 비로 부서지고 유실된 곳이 많아 한동안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남해 멸치 쌈밥 한 상

 

기대보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차에 오르니 조금 졸린 것이 계절을 착각하고 찾아온 식곤증인가 봅니다. 지난 수능 이후 며칠 차가웠던 바람이 오늘은 유난스럽게 부드러운 것이 창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운전하는 기분이 썩 괜찮습니다.

 

이번 남해여행의 숙소는 앵강만 건너편 산 너머 동쪽 해안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해 섬의 서 북단에서 남쪽 끝으로 달려왔는데 이번에는 섬 해안과 내륙에 난 길을 골고루 달려 동쪽 끝으로 이동합니다. 이는 차로 50분 거리입니다.

 

숙소는 독일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 남해 요트학교 입구에 위치해있습니다. 특별히 위치를 지정한 것은 아닌데 이런저런 조건을 맞추다 보니 마침 이 자리입니다.

 

 

남해 독일마을

 

독일마을은 잘 알려진 대로 1960에서 80년 사이 독일로 파견됐던 광부와 간호사들 일부가 귀국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관광자원을 개발하려는 지자체의 의지도 포함됩니다. 이는 앞선 다수의 예술인 정착촌 조성 사업처럼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독일마을 꼭대기 주차장에서 바라본 도이치 플라츠 입구

 

마을 입구에서 도이치 플라츠 즉 독일 광장 옆 주차장을 잇는 왕복 2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주거 단지가 조성되고 길 바로 옆에는 독일식 소시지와 맥주 등 음식을 만들어 파는 상가가 생성되면서 경주 대릉원 주변의 황리단길처럼 타 지역 출신 관광객들이 찾는 이 지역 핫 플레이스가 생성된 셈입니다.

 

독일마을 도로가에 생성된 상가

 

물론 상권의 절대적 크기와 주변의 소비 수요가 작아 부침은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 가족이 방문한 금요일과 토요일 양일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독일마을은 연중 무효로 운영되지만 특히 10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 맞추어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맥주축제 기간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도이치 플라츠의 시계탑, 기념품 가게, 주점

 

독일마을은 베이지색 벽과 다홍색 기와로 만들어진 서유럽식 주택들과 이국적인 분위기 자체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파독 노동자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겉만 보는 셈입니다. 따라서 도이치 플라츠에 위치한 파독 전시관 관람을 추천합니다. 이는 독일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2~3분 거리입니다.

 

1963년에서 1980년 사이 7900여 명의 근로자들이 당시 서독으로 파견됩니다. 정부는 명분상 당시 국내의 실업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이 국내에 송금할 외국 돈이 대외 신인도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 중요한 동인으로 보입니다.

 

남해 파독전시관

 

파독 전시관은 간호사와 광부 두 가지 테마로 구성돼있고 가장 안쪽에 영상 상영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파독 노동자들이 처음에 겪었을 어려움은 지금 국내에 와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을 듯합니다. 국내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던 독일 현지에서는 언어의 벽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습니다.

 

 

남해파독전시관 내부와 전시물

 

간호사들의 경우 이 문제가 더욱 심각했는데 다행인 것은 이 문제가 해결되자 그들은 그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고 차츰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광산은 늘 사고 위험이 존재했는데 이와 관련해 파독 전시장 입구에 씌어진 Glückauf 즉 ‘살아돌아오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나는 매일 막장으로 들어가는 호이스트를 타면서 느꼈을 불안함도 공감했는데 비록 3개월이 안되는 기간이지만 나 역시 광산 막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Glückauf는 독일광부의 인사말이지만 그 의미는 사뭇 비장하다.

 

참고로 파독전시관 입장은 유료이고 미취학 어린이와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제외하고 일 인당 1000원입니다. 운영시간은 연중무휴로 오전 9시에 문 열어 오후 6시에 닫습니다.

 

일행은 파독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인근의 전망대에서부터 천천히 입구 쪽으로 내려가며 마을을 구경합니다. 이곳은 앞서 설명한 대로 주도로 양쪽에 식당들이 들어서 있고 그 뒤로 주택이 배치돼있습니다. 참고로 기념품 구입은 독일광장에 위치한 가게에서만 가능합니다. 이상으로 남해여행 첫날 일정을 마칩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